EPA, 데이터센터 대기오염 허가 관련 공청 절차 폐지 추진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이른바 '경미한 배출원'에 대기오염 허가를 내주기 전에 각 주가 주민에게 통지하고 30일간의 의견 수렴 기간을 두도록 한 연방 규정을 폐지하려 하고 있다. 이 범주에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쓰이는 많은 발전기가 포함된다. 14개 주 법무장관과 약 200개 단체가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특정 산업 시설이 대기오염물질 배출 허가를 받기 전에 공개 통지와 의견 수렴 기간을 의무화한 연방 규정을 폐지하려 하고 있다. 이번 제안은 1970년대부터 시행되어 온 "신규 오염원 심사(New Source Review)" 제도에 따라 발급되는 이른바 "경미한 배출원(minor source)" 허가를 대상으로 한다. 이 제도는 매립지, 제지 공장, 제철소, 세탁 공장, 발전소 증설 등을 포괄해 왔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예비 전력을 공급하는 대형 디젤 발전기와 가스터빈까지 포함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이어진 연방 차원의 안전장치
현행 규정에 따르면 기업이 경미한 배출원 대기오염 허가를 신청할 경우, 심사를 담당하는 주 또는 지방 기관은 인근 주민에게 통지하고 허가를 내주기 전 30일간의 공개 의견 수렴 기간을 열어야 한다. EPA는 지난 7월 이 연방 차원의 의무를 폐지하고, 공중에 통지할지 여부를 포함한 결정 권한을 개별 주에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EPA 청장 리 젤딘은 이 계획을 발표하는 성명에서 "문제와 대중에 가장 가까운 주 및 지방 당국이 가능한 한 허가 절차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하며, 워싱턴이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며, 이를 "불필요하고 부담스러운 관료적 절차"를 줄이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EPA는 경미한 배출원이 "상대적으로 배출량이 적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발표는 올해 7월 EPA가 공식 성명을 통해 밝힌 것으로, 규정 개정의 첫 단계였다.
이미 논란의 중심에 선 데이터센터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가 미국 전역에서 빠르게 늘어나면서, 신규 오염원 심사 제도는 데이터센터 시설 자체는 물론 이를 위해 건설되는 발전소와 비상 발전기를 둘러싸고도 갈등의 초점이 되고 있다.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xAI의 대형 데이터센터 "콜로서스 1(Colossus 1)"은 2025년 경미한 배출원 허가를 신청했다. 지역 보건 당국이 통지를 게시한 뒤 공청회가 열렸고 수천 건의 의견이 접수됐다. 남부환경법센터(SELC)와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는 같은 해 xAI가 허가 없이 해당 부지에 가스터빈을 설치했다며 각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경고했다. 캘리포니아주 길로이에서는 지난달 아마존 데이터센터의 공사가 시작됐지만, 많은 인근 주민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수년에 걸친 승인 절차로 인해 공개 의견 수렴 기간이 이미 2년 전에 종료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주정부와 보건 단체들의 반발
- 14개 주의 법무장관과 3개 도시 관계자들이 EPA의 제안에 반대하는 공동 서한에 서명했다
- SELC를 포함한 약 200개 보건·환경 단체가 EPA에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의견을 제출했다
- 의견 수렴 기간이 종료되기 전까지 4900건이 넘는 공개 의견이 접수됐으며, EPA는 여전히 이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하버드대 T.H. 챈 공중보건대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버지니아주 라우던 카운티에 있는 밴티지의 데이터센터 한 곳이 연간 5300만~9900만 달러의 건강 피해를 유발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단일 시설에 대해 산출된 역대 최대 규모의 추정치다
EPA가 허용하려는 것은 이 모든 시설이 대중을 상대할 필요 없이 그냥 통과되고, 허가가 밀실에서, 문 뒤에서 은밀하게 발급되는 상황이다. 불도저가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각 주 법무장관들은 서한에서 "이름과 달리 경미한 배출원조차 건강과 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통지 및 의견 수렴 의무를 없애는 것은 "행정 편의라는 명목으로 투명성과 민주주의라는 근본적인 안전장치를 제쳐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EPA는 주정부가 원할 경우 연방 최소 기준보다 더 엄격한 규정을 계속 적용할 수 있으며, 이번 변경은 단지 결정 권한을 영향을 받는 지역사회에 더 가깝게 옮기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EPA 자체 제안에 대한 의견 수렴 기간은 지난주 종료됐으며, 4900건이 넘는 의견이 아직 검토 중이다. EPA는 규정이 최종 확정되면 1년 이내에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남은 쟁점들
이번 논쟁의 핵심에는 "경미한 배출원"이라는 분류 자체가 있다. EPA는 이 범주에 속한 시설들의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설명하지만, 환경 단체들은 개별 시설의 배출량이 적더라도 한 지역에 여러 시설이 몰릴 경우 누적 영향이 상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처럼 대형 디젤 발전기와 가스터빈을 함께 갖춘 시설이 한 지역에 잇따라 들어설 경우, 개별 허가 심사만으로는 전체적인 대기질 영향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논쟁이 앞으로 어떻게 마무리되든, 그 결과는 인공지능 인프라 확장과 지역 주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미국이 어떤 균형을 택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또한 이번 개정안은 대기오염 규제뿐 아니라,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에서 환경 감독 권한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더 오래된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대기오염 물질은 주 경계를 넘어 확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연방 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있었고, 이번 제안은 그 논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셈이며, 앞으로 다른 환경 규제 분야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연방 권한 축소가 이어질지 지켜볼 대목이다.
한국 독자에게 의미하는 것
한국 독자들에게 이번 사례는 미국 밖에서도 반복될 수 있는 긴장 관계를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건설이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인공지능 인프라 구축을 서두르라는 압력이 커질수록 환경 허가 절차에서 주민에게 얼마나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비슷한 형태로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미국 사례는 그러한 투명성이 후퇴할 때 실제로 무엇을 잃게 되는지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즉, 주민들이 미처 대응할 시간을 갖기도 전에 허가가 먼저 내려지는 상황이다. EPA가 이 규정을 최종 확정하고 각 주가 이를 어떻게 적용하는지는, 앞으로 다른 나라에서 벌어질 비슷한 논쟁에도 하나의 참고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